김치스 시절의 추억과 영국 연주여행...
2012년 11월 13일...아티스트 이기일님의 기획으로 한국의 비틀스 카피밴드 멘틀스와 더불어 비틀스의 고향 영국의 리버풀로 연주여행. 네델란드의 암스텔담을 거쳐 런던에 도착, 하루밤을 묵고 기차로 리버풀에 도착, 숙소에서 1박하며 공연준비, 다음날 저녁 공연,(함께 간 멘틀스가 비틀스의 곡만을 연주하기에 나는 에릭 클랩톤, 핑크 후로이드같은 영국밴드들의 곡을 주로 연주했다) 공연 다음날은 비틀스박물관을 비롯한 리버풀의 명소를 둘러보고 1박후 런던으로 출발,런던시내 관광후 1박하고 귀국...
비틀스와 나의 인연은 내 삶을 바꾸어 놓았다. 고교시절이던 1963년 나는 평소 즐겨듣던 한국의 미군방송 AFKN에서 처음으로 비틀스의 음악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는데 그 음악은 평소에 듣던 칸츄리 뮤직이나 흑인들의 두왑, 엘비스 프레슬리의 롹엔롤과도 전혀 다른 차원의 음악이였다.무엇보다도 그들은 가수와 밴드의 구분이 없이 자신들이 만든 음악을 스스로 연주하고 노래하였으며 강력한 전기기타와 드럼,베이스의 간단하면서도 매우 파워풀한 사운드로 신비롭고 새로운 음악세계를 창조하였다.
완전히 매료된 나는 앞으로의 삶을 이런 음악을 하며 살기로 결심하고 독학으로 기타를 시작했으며 고3이되어 밴드부 악장이되자 학교의 각종 응원등의 행사에 관악기 위주의 밴드편성에서 탈피한 음악을 시도하였고 한편으로는 밴부부원으로 구성된 소규모의 캄보밴드를 조직하여 서울시내 각 대학교 카니발등에 불려다니는등 연주활동을 시작했는데 졸업을 앞두고 이미 미8군악단에 진출하여 활동하던 밴드부 선배들의 추천으로 미8군쇼에 연주자로 발탁되어 프로 뮤지션의 길을 시작하게 된다.
이때 나의 미8군 첫 밴드에서 만난 멤버는 드럼에 김대환형님(나중에 한국 그룹사운드협회 초대 회장이셨던 전설의 기인)기타엔 이 진 (60년대 후반 명동 미도파 싸롱등에서 유명했던 바보스란 그룹의 리더)보칼에는 신중현씨의 빗속의 여인을 최초로 취입했던 서정길씨등으로 서정길씨는 불행히도 70년대초 청량리 대왕코너 나이트크럽 화제시 그곳의 밴드로 일하다가 산화했다.
다음해인 1965년 나는 당시 세계를 휩쓸고 빌보드의 상위 챠트를 모조리 점령하고있던 비틀스의 음악만을 연주하는 김치스란 팀을 시작하게 된다. 리더였던 유희백은 60년대초 일반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졌던 키보이스란 그룹을 윤복희의 오빠인 드러머 윤항기등과 함께 시작했다가 곧 탈퇴하고 당시 미8군 대행 연예회사 화양에서 활동하던 비슷한 또래의 젊은 연주자들인 기타 이성봉,드럼 허정희, 베이스인 나와 함께 비틀스와 똑갘은 구성의 4인조 김치스를 탄생시킨것인데 우리는 전국의 미군들을 상대로 연주활동을 했다.
우리는 사진에서본 비틀스의 유니폼을 흉내낸 의상을 입고 그들의 힛트곡들을 연주했는데 이때는 비틀스가 그들의 유명한 Let it be,Yesterday같은 수많은 명곡들을 발표하기전인 초창기때라서 당시에 우리가 연주했던 곡들은 그들이 초기에 발표했던 곡들이였다.
(김치스.1965. 왼쪽부터 이성봉,유희백,심형섭)
최근 나의 블로그를 통하여 스웨덴에 살고있는 김치스의 리더 유희백과 50년만에 연락이 되어 그가 소장하고있던 김치스 시절의사진을 몇장 더 구했다.
드디어 김치스 4명이 함께 짝은 1965년 당시의 사진이 인터넷상에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것으로 이 역시 한국 움악사의 귀한 재료가 될것이다.
왼쪽부터 이성봉(리드 기타),유희백(리듬 기타,리드 보컬),심형섭(베이스),허정희(드럼)
김치스에서의 활동은 1년으로 끝나고 다음해인 1966년 나는 군에 입대하여 월남파병 2년을 비롯한 3년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한후 포지션을 기타로 바꾸고 미8군으로 돌아가 연주생활을 하다가 1970년 주월미군의 쇼밴드로 다시 월남에 가게된다.이 시기는 나의 음악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점으로 수십만의 주월 미군들을 상대로 세계에서 몰려온 수많은 밴드와 연주자들을만나고 함께 생활하는 과정에서 나는 음악에 관한 많은것을 직접 보고 느낄수가 있었다. 1969년 우드스탁 콘서트를 전후한 그 시점은 Beatles,Rolling Stones, Led Zeppelin,Cream,Black Sabbath.Pink Floyd,The Who 등등의 수많은 영국밴드들과 Jimi Hendrix,Santana,Jefferson airplain,Beach boys,Steppenwolf,Doors,CCR 등의 미국밴드등 그야말로 기라성같은 수많은 전설의 밴드들이 등장하여 어느 국가가 아닌 온 세계를 열광케한 소위 Rock의 르네쌍스라고 일컷는 인류역사상 전무후무했던 역사적인 시점으로 이러한 시대적인 배경의 영향으로 인해서 나는 Blues를 기반으로한 Rock Guitarist로서 앞으로의 확고한 음악방향을 결정하게 되었다.
1년후 귀국한 나는 드디어 내 스타일의 음악을 하기위해 1971년 피닉스를 조직하고 서울의 여러 고고장을 주무대로 활동하다가 1976년 미국으로 떠나 그후 30년 가까이 미국서 음악활동을 하며 내가 원하던대로의 인생을 살다가 귀국, 지금은 시골에서 조용히 칩거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음악여정은 계속 진행중이며 나의 평생에 걸친 음악인생은 비틀스와의 만남으로 시작되었기에 이제 나의 음악과 삶의 여정이 끝나가는 이 시점에 이르러 다시한번 50년전 김치스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며 이 모든것의 출발점인 비틀스의 본 고장 영국의 리버풀에 직접가서 연주할 기회를 갖게된것은 내게 매우 뜻깊고 의미있는 마무리였다고 생각한다.
1969년 8월 8일에 찍은 비틀스의 11번째 앨범 "Abbey Road"의 카버사진은 런던의 "Abbey Road Studio" 바로 앞길을
건너는 비틀스 4명의 사진으로 음악역사상 최고로 유명하고 최고로 많이 패러디가 된 비틀스의 음반 표지 사진이다.
나도 비틀스 음반사진에서 비틀스가 건너던 바로 그 Abbey Road의 건널목을 건너본다.
왼쪽이 비틀스의 "Abbey Road" 앨범을 녹음했던 "Abbey Road Studio"
드디어 리버풀에 입성.
리버풀 거리에 내가 1965년 미8군에서 비틀스 카피밴드하던 김치스시절의 포스터가 붙어있다.
리버풀의 비틀스 박물관.